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ublic Investment Fund·PIF)가 미국 상장 주식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최근 공개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13F 보고서에 따르면 PIF는 2분기 동안 메타(Meta), 쇼피파이(Shopify), 페이팔(PayPal), 알리바바(Alibaba), 누홀딩스(Nu Holdings), 페덱스(FedEx) 등 주요 글로벌 기술·금융 기업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이로써 PIF의 미국 상장 주식 및 옵션 보유액은 1분기 255억 달러에서 2분기 238억 달러로 줄어, 약 20억 달러 규모 축소가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차익 실현 차원을 넘어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커지는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이번 매각의 배경에는 미·중 갈등, 미국의 관세 정책,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미국 대선 이후 변동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사우디는 해외 자산의 변동성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
실제로 PIF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투자 비중을 30%까지 확대했으나, 최근에는 이를 18~20% 수준으로 낮추고 국내 투자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는 단기 수익보다 중장기 국가 전략에 맞춘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해석된다.
비전 2030: 국내 메가프로젝트에 자금 집중
사우디의 이 같은 행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비전 2030(Vision 2030)’ 전략과 직결된다. 비전 2030은 석유 의존을 줄이고, 첨단 기술·관광·스포츠·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우는 국가적 청사진이다.
대표적으로 네옴(NEOM)은 인공지능, 지속가능성, 스마트 인프라를 결합한 초대형 미래 도시 프로젝트이고, 홍해 프로젝트는 고급 관광 리조트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관광 허브 조성 사업이다. 키디야(Qiddiya)는 리야드 인근에 조성되는 대규모 엔터테인먼트·스포츠·문화 단지로, 글로벌 이벤트 유치를 목표로 한다.
또한 사우디 그린 이니셔티브(Saudi Green Initiative)는 대규모 재조림, 청정에너지 투자, 탄소 감축을 통한 친환경 전환을 상징한다. PIF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국내에서 공급하기 위해 해외 포트폴리오를 축소하는 것이다.
PIF 총자산 전년 대비 19% 증가
PIF의 2024년 기준 총자산(AUM)은 9,1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9% 늘었고, 수익도 25% 증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170억 달러의 부채 조달과 150억 달러 규모의 무담보 신용 한도 확보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끌어모았다. 이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필요한 현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일각에서는 투자 운용의 투명성 부족을 우려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PIF가 해외 투자 자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인프라·신흥시장 지분 투자는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선별적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단기 변동성이 큰 빅테크·핀테크 분야에서는 과감히 철수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국내 성장 동력 집중 나서나
전문가들은 이번 움직임을 두고 “사우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국가 경제전략의 주도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특히 미국 증시가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PIF의 과감한 축소는 국내 신산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행보라는 것이다.
익명의 중동 전문가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PIF의 투자 방향은 글로벌 시장 환경과 국제 유가, 비전 2030 프로젝트 진척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당분간은 해외 축소·국내 강화라는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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